현대 인류 대부분은 건물에서 태어나 건물에서 생활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으니 우리의 삶은 건물에서 시작해 건물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건물은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곁에 마련된 공간이며, 마치 공기처럼 삶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하지만 기후 위기의 시대를 맞아 건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물·건설 부문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10GtCO₂(기가톤이산화탄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8%에 해당하는 값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배출량이다.
그렇다면 건물은 어떤 방식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할까? 미국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중 건물과 관련되어 배출되는 양은 전체의 50%에 달하는데, 이 중 15%는 건물의 부자재 생산이나 시공, 혹은 철거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배출되며 나머지 35%는 냉난방을 비롯, 건물의 유지·관리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건물은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
환경을 위해,
그린빌딩(Green Building)
전 세계가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금, 건물을 통해 배출되는 탄소 역시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 제시된 것이 바로 그린빌딩(Green Building)이라는 개념이다. 그린빌딩이란,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전을 목표로 고효율 에너지 설비와 환경공해 저감기술 등을 적용해 건물을 짓고 건물의 수명이 끝나 해체될 때까지도 환경에 대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지어진 건축물을 뜻한다.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주요 선진국들은 그린빌딩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주택 및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영국은 다가오는 2050년까지 새로 지어지는 건물뿐 아니라 기존 건물도 ‘제로 카본’에 근접할 수 있도록 난방시스템 개조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독일은 패시브하우스* 건립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등 저에너지 친환경 주택을 늘리기 위한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일본은 고효율 건물 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할 시 비용의 ⅓ 가량을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등 그린빌딩 보급 확대에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린빌딩과 관련된 국내 현황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토 가용 면적은 낮지만, 가용 면적 대비 인구수는 높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동일 면적에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건설 단계뿐 아니라 운영, 폐기 단계에 이르기까지 건물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2002)’,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2010)’,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제도(2011)’ 등의 여러 제도를 시행하여 국내 그린빌딩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패시브하우스: 첨단 단열공법을 이용하여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
아파트에도 불어온
친환경 바람
국내의 그린빌딩을 향한 움직임은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하여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최근에는 아파트 건설사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단지 곳곳에 친환경적인 요소를 배치하거나 단열·기밀 성능이 우수한 자재를 활용해 아파트를 지으며 그린빌딩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준공된 아파트 단지들은 에너지 절감을 위해 단열 성능이 우수한 건축 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온도 변화를 막아주는 차열 페인트를 활용하는 등 건물의 설계 및 준공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지 내에 빗물 재활용 시스템, 혹은 태양광 발전 설비 등을 구축하여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건설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1~2등급에 달하는 높은 에너지 효율 등급을 획득한 아파트 단지는 노후 단지보다 60% 이상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보인다고 하니 효과는 상당한 셈이다.
아파트 내부를 가변형 구조로 설계하는 것 역시 최근 친환경 아파트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다. 가변형 구조의 인테리어는 실내의 주요 공간을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구성할 수 있어 불필요한 리모델링을 줄이고, 아파트의 수명을 늘려 재건축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을 절감하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친환경 아파트,
자연을 더 가까이
최근의 아파트 트렌드에서 에너지 효율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은 바로 녹지공간의 유무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2020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산림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5%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녹지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쾌적함을 모두가 중요한 삶의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최근 건설사들은 아파트 단지 내 녹지 면적을 늘리고 있으며 인근의 공원이나 숲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화단'을 넘어 공원을 연상시키는 조경을 갖춘 아파트의 인기와 '숲세권'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은 이같은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한양은 주택 브랜드 수자인을 리뉴얼하며 브랜드 핵심 가치 중 하나로 'Eco(자연)'를 제시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녹지공간이 쾌적한 주거 환경의 요건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건폐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건폐율이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뜻한다. 녹지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아파트는 건폐율이 낮다는 걸 의미하는데, 건폐율이 낮을수록 건물 사이의 여유 공간이 많아 사생활 보호와 채광 확보에 유리하다.
친환경 아파트가 내디딘
그린빌딩으로의 한걸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고기 대신 채소를 섭취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건물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는 사실은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그린빌딩이 늘어나 에너지 사용 효율이 높아진다면 도시 지역의 탄소 저감 효과는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국내 건축물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어 탄소 중립의 미래는 밝아지고 있다. 탄소 저감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그린빌딩과 친환경 아파트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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