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글자의 명료한 이 단어는 본래 물리적 거주 공간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집은 수없이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으며, 어떤 모습의 집에 살고 있느냐는 우리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은 물리적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 특별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집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집과는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우리만의 고유한 주거문화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았다.
서구권 국가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
유럽, 혹은 북아메리카와 같은 서구권 국가는 일반적으로 주거단지를 조성할 때 오직 주거만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계획을 수립한다. 즉, 집이란 주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소위 ‘인프라'로 일컬어지는 각종 편의시설의 유무는 집을 선택함에 있어 크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내로라하는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서구권 국가 대부분이 각종 편의시설과 주거시설을 구분하는 도시계획 하에 주거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땅은 한반도의 거의 100배 크기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3억 명으로 우리나라의 7배 수준에 그친다. 때문에 평균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의 주거 형태는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분포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주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넓은 면적과 개방성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미국의 집은 일반적으로 마당을 끼고 있는 넓은 단독 주택 형태다. 실제로 미국 대다수의 주택은 평균 면적이 약 70평 이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러한 단독 주택은 보통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벼락이 없거나 낮게만 둘러져 있어 상당히 개방적인 구조를 띤다. 여기에 집마다 정원과 뒷마당이 함께 있어 거주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정원을 꾸미거나 작은 텃밭을 가꾸곤 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지에서는 아파트와 유사한 형태를 갖춘 주거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일명 ‘콘도'라 불리는 콘도미니엄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의 아파트는 회사나 개인이 전체를 소유하고 각 호실을 임차인에게 오직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콘도의 경우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각 호실의 입주자가 소유권을 가질 수 있어 월세 개념으로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콘도는 건물 내부에 수영장이나 헬스장, 파티룸 등의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어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시 생활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하지만 콘도는 주로 5층 내외의 저층 형태를 띄고 있어 한국의 고층 아파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베를린에 위치한 저층 빌라
유럽의 주거 형태는 어떨까?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도시는 교회와 시청사, 광장 등의 주요 공공시설물을 중심으로 저층 고밀한 건물들이 도시의 구획을 나누는 구조다. 유럽은 도시의 전반적인 미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발전을 지향한다. 때문에 비슷한 건축 양식과 높이를 가진 건물들 사이에서 갑자기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특히 독일의 경우 현재까지도 고층 건물 개발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실제로 독일에서는 단독주택, 혹은 5층 내외의 저층 빌라가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주거 형태다.
가깝고도 먼
동아시아 국가의 주거 형태
우리나라와 인접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가장 인접한 국가인 일본은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이는 주거 문화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 의하면 지난 2019년 기준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56.5%에 달한다. 약 10명 중 6명에 가까운 이들이 단독주택에 거주 중인 셈이다. 단독 주택의 뒤를 잇는 대중적 주거 형태로는 ‘맨션'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유사한 개념이다. 하지만 지진이 잦은 일본의 지리적 특성상 맨션은 10층 내외의 저층이 일반적인 형태이며, 국내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세대수가 많지 않아 우리나라처럼 특정한 단지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물론 도쿄와 같이 인구 밀도가 아주 높은 도심지에는 초고층 아파트 형태의 ‘타워 맨션'이 있기는 하지만, 높은 월세 탓에 대중적인 주거 공간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홍콩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고층 아파트가 대중화된 곳은 단연 홍콩이다. 약 700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홍콩의 면적은 서울의 약 1.8배에 달한다. 하지만 국토의 70% 이상이 녹지로 이뤄져 가용 면적이 아주 협소한 편에 속한다. 즉 홍콩은 높은 지가와 인구 밀도 탓에 오직 주거 기능의 확장 측면에서 초고층 아파트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홍콩 아파트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좁은 면적이다. 평균적으로 홍콩의 4인 가족은 15평 내외의 집에 거주한다. 거주 공간의 면적이 좁다 보니 모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실내 공간의 동선이 최소화되어 있다. 또한 다습한 기후 탓에 환기를 위해 집안 곳곳에 큰 창문이 나있는 것도 홍콩 아파트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하지만 홍콩에서도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기는 힘들다. 좁은 공간에 주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1의 목적이기 때문에 단지 내 녹지 공간을 비롯한 다중 이용 시설을 조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아파트 주거 문화
우리나라는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가 1960년대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시 개발 계획 사업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가 빠르게 집중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양식으로 아파트가 제시된 것이다. 아파트는 정부 주도 하에 계획적으로 착실히 공급되었고, 빠른 속도로 도시민의 생활 공간이 되어갔다. 그렇게 약 60년이 지난 2020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1.5%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 한양 수자인 파크원
국민의 절반가량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나라 아파트만의 독특한 특징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단지문화를 꼽을 수 있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주요 건설사들이 저마다의 브랜드를 내걸고 단지별로 환경 요소나 인테리어 요소 등을 특화 시켜 체계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피트니스클럽이나 수영장, 골프 연습장 같은 고급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되는 단지도 등장했는데, 이처럼 단지별로 특화된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사는 아파트에 따라 생활 모습이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내 아파트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주변 인프라를 중시하는 데 있다. 지하철역을 반경 500m 내외에 둔 지역이라는 뜻의 ‘역세권'은 기본이고, 인접한 곳에 학교가 있는지를 고려하는 ‘학세권', 상쾌한 숲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숲세권' 등 각종 주거 인프라들이 신조어로 재탄생하여 아파트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사람들이 아파트에게 주거 그 이상의 역할을 원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주거를 위한 공간을 넘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솔루션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거 공간’에 방점을 찍는 서구권의 주거 문화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편 아파트 단지 전반에 적용된 스마트 시스템은 최근 들어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트렌드다. IoT(Internet On Things, 사물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시스템을 이용하면 간단한 스마트폰 연동 과정만으로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을 예약하거나 주차 공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일은 물론, 승강기 호출, 방범 모드 설정 등의 다양하고도 섬세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주거공간과 스마트 기술의 융합은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해 준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주거 시장의 블루칩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홈 시장의 규모는 이미 80조를 돌파했으며, 다가오는 2025년에는 무려 100조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바야흐로 새로운 아파트 문화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아파트,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공간이 되다
세종 리슈빌수자인 단지 모습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느 도시를 가나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단지를 이루어 모여있는 아파트의 모습은 늘 보아와서 익숙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풍경이지만 아파트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주거 형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나란히 모여 서있는 아파트가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커뮤니티 시설 도입, 각종 생활 편의 인프라 구축, 그리고 스마트 시스템 적용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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