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지방에서 지구에 대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모두 들려왔다. 먼저, 부정적인 소식은 영구동토층(permafrost)*이 녹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 것이란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구동토층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가득 품고 있어 한꺼번에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영구동토층에 갇혀 있던 각종 고대 바이러스 유출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감염병 전문가들은 지구의 온도 증가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층의 온도가 1년 내내 계절과 관계없이 어는 점(0℃) 이하로 유지되는 땅을 말하며 영구적으로 얼어 있는 땅이라는 뜻. 주로 북극, 남극과 같은 고위도의 극지방에 분포한다.
한편 긍정적인 소식은 극지연구소의 연구 결과, 북극의 미세조류가 구름을 만들어 태양에너지를 차단하고 이를 통해 지구가 자체적으로 온난화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기 위해 환경 파괴를 지속하는 동안 지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정작용을 하고 있던 것이다.
건축 및 건설 분야에도
불어온 ‘친환경’ 바람
이런 상황 속 세계 건축 및 건설연맹(GlobalABC)은 ‘2020년 현황 보고서’에서 2019년 건설 및 건물 운영 부문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10GtCO₂(기가이산화탄소톤)으로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8%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건축 및 건설 분야에서도 지구 보호를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로 제로에너지 건축물(Zero Energy Building)이 떠오르고 있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 따르면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란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을 뜻한다. 즉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을 받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여 사용하며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0(Zero)’으로 만드는 친환경 건축물을 말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가장 먼저 난방 및 생활에 사용되는 각종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하는 ①고효율 저에너지 소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의 ②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점을 고려하여 보완책으로 ③기존의 전력망과 연계되어야 한다.
패시브 기술과 액티브 기술의 Plus로
탄생한 Zero 에너지 건축물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패시브(Passive, 수동적) 기술과 친환경 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액티브(Active, 능동적)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패시브 기술은 건물 외벽에 열손실을 방지하는 고성능 단열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1차적으로 에너지의 손실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이외에 우리나라의 계절별 위도 차를 고려하여 겨울에 일조량이 풍부한 남향 구조로 설계하는 것, 창의 면적을 최적화하고 고효율의 창호를 설치하는 것, 차양을 설치하여 여름에 실내로 유입되는 햇빛을 막는 것 등이 모두 패시브 기술을 활용한 예다.
액티브 기술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활용해 거주에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여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액티브 건축물은 주로 관리가 용이하고 효율이 좋은 태양광 발전을 이용하기 때문에 액티브 솔라 하우스(Active Solar House)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태양광뿐 아니라 태양열, 지열, 풍력, 바이오매스 발전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태양열, 지열 등의 열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지 않고 난방과 온수에 활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적극적으로 적용되는 추세다.
출처: 주핀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핀란드 비키 전경
제로에너지 건축 기법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되어 국내로 전달되었는데 그중 핀란드의 비키(Viikki)는 제로에너지 타운의 초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사례다. 비키는 수도인 헬싱키에서 약 8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1994년 환경친화적인 주거복합도시 조성을 목표로 하여 시작되었다. 이러한 목표 아래 주택 설계 시 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활용하였으며 이를 마을 전체에 적용하였다. 현재에도 비키에 방문하면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주택단지와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보봉(Vauban) 역시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유명하다. 태양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는 건물의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회전하는 방식으로, 관광 명소로도 익히 알려진 헬리오트롭은 기존의 고정형 태양광 패널보다 발전효율을 15~20% 정도 높였다. 더불어 보봉 마을의 주택들은 난방 효과를 위해 주택과 주택 사이를 밀착시켰으며 남쪽으로는 커다란 창문을 내는 등 다양한 패시브 기술을 활용하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해외를 넘어 국내에 진출한
제로에너지 건축물
1990년대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2017년 제로에너지 등급 인증 제도가 처음 시행되며 세간의 관심을 얻었다. 당시 총 4개의 건물이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인정받았는데 서울에너지드림센터가 그중 하나다. 서울에너지드림센터는 국내에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전인 2008년 설계되어 2012년 12월 완공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출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세종 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이후 2018년 2월에는 충청남도 아산에서 국내 최초의 제로에너지 도서관이 개관했고 같은 해 12월 세종시에는 공공기관 최초의 제로에너지 청사인 세종시 선거관리위원회의 청사가 준공됐다.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되어 청사에서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의 일부를 태양광 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또한 지하의 지열 발전 시설을 통해 생산된 지열 에너지를 냉난방에 사용하는 등 에너지 자립률이 52.8%에 달하는 친환경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제로에너지 건축 기법이 국내에 알려진 것이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의 기대가 높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했는데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가 포함됐다. 2025년까지 1,000㎡ 이상의 모든 건축물에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전면 시행, 2030년에는 건축물의 70%가 제로에너지로 지어지도록 하는 단계별 시행 방안도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필수적이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은 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 1++ 이상, 건축물 에너지관리시스템 또는 원격검침 전자식 계량기 설치 여부를 확인한 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참여 독려를 위해 다양한 혜택도 마련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 보조금 지원, 건축기준 완화 등의 사전 혜택과 에너지 효율 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은 건축물에 대한 세제 혜택, 주택도시기금 대출한도 확대 등의 사후 혜택이 준비되어 있다.
2020년 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산업 활동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자 자연환경이 회복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 12월 이후 중국의 산업 활동이 최대 40% 이상 감소했다는 분석 결과와 함께 2020년 3월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에서는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이 관측됐다. 대기 환경이 개선되는 것과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던 야생동물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인도 루시쿨야 해변에서는 알을 낳기 위해 돌아온 올리브 바다거북 80만 마리가 포착되어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의 개념을
일상으로 확장해보자
현재의 인류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전기 및 연료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단기간에 에너지 사용량을 현격히 줄일 수 없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류가 이룩한 문명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지구는 기다려주지 않기에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의 개념을 일상으로 확장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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