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IN

자연과 기술,
그리고 인간
자연, 기술, 인간이 공존하는 건축물들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전공 부교수 국형걸

2022.03.04

건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역에 따라 특정한 건축 양식이 주를 이루고 그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 궁궐과 교회 같은 권력과 신앙의 공간이 건축의 주 대상이었고, 건축은 특정 계층들이 누리는 고급문화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근대 이후 건축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면서 빛과 공간을 활용한 기하학적 공간으로 새로운 실험적 시도를 해가는 모더니즘 건축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한 세기를 넘게 이어져온 모더니즘 건축은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능성과 합리성만으로 공간과 형태를 만들지 않고 더 이상 대량생산만을 위한 획일적 건축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건축에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특정 주류의 양식이 존재하지 않고 보다 융합적이고, 보다 사회적이고, 보다 친환경적인 건축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되고 있습니다. 지역적 이슈와 건축가들만의 이슈를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융합하여 인류와 환경을 위해 지속 가능한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주목을 받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기술,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 요소가 각기 다르게 융합된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I. 인간&기술

: 친환경 기술과 융합된 주민 친화시설


우리의 도시는 이미 그 밀도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공공을 위한 공간은 부족하고 필수 기반 시설이 들어올 공간도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런 가운데 건축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도시의 유휴시설이나 혐오시설을 시민들을 위한 편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건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건축가는 주어진 대지와 주어진 프로그램에 맞추어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 도시의 유휴공간을 발굴하고 그곳에 새로운 공간적 아이디어를 입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시도해가고 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는 비야케잉겔스(Bjarke Ingles)가 디자인한 화력 발전소입니다. 화력 발전소이지만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첨단 폐기물 화력 발전소입니다. 이 발전소의 특징은 발전소의 거대한 형태가 스키 슬로프가 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도시의 혐오시설 혹은 유휴공간이 되는 발전소 공간을 주민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공공간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Amager Bakke / Bjarke Ingels Group / 출처 : www.dezeen.com

 

이 발전소는 사계절을 즐길 수 있는 인조잔디 슬로프를 갖추고 있고, 이 외에도 인공암벽 등 여러 스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건물의 내부에는 최신식 폐기물 처리시설과 에너지 생산기술이 합쳐져 지속가능한 에너지생산 개념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연간 44만 톤의 폐기물을 소각한 청정에너지로 15만가구에 난방과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건물이거나 혹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건물이 아닌 도시의 친환경 시설 자체를 주민들의 일상이 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인간과 기술이 조화되는 새로운 건축적 시도입니다.


Amager Bakke / Bjarke Ingels Group / 출처 : www.dezeen.com 


II. 자연&인간

: 자연을 닮은 새로운 교육 공간


새로운 교육은 새로운 공간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공간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학교의 공간적 잔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 건축과 교실 공간은 우리의 교육을 아직까지 수동적이고 답답하게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변화는 공간의 변화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공간의 변화는 기술의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Heatherwick Studio / 출처 : www.archdaily.com

 

싱가포르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의 러닝허브(Learning Hub)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가 설계한 싱가포르의 새로운 교육 랜드마크입니다. 마치 화분과 같은 항아리 모양의 둥근 매스가 주렁주렁 모여 만들어진 형태와 내부의 정글같은 아트리움 공간은 새로운 학생들에게 새로운 창의적 교육공간을 제공합니다. 기계식 교실의 배치를 벗어나 학생과 교수가 어디에서나 만나 학습할 수 있는 수평적 소통의 공간을 지향하였습니다.  

 

 

Heatherwick Studio / 출처 : www.archdaily.com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혼재된 사교공간과 학습공간은 소그룹 교육과 적극적인 학습을 촉진하는 새로운 교수 학습법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건물의 학생들은 항상 시각적으로 열려 있고 머물고 모이고 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으로 친환경적인 아트리움 테라스 정원을 갖습니다. 건축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울어져 디자인된 공간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사고를 유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게 됩니다. 기술적 혁신으로 제작된 3차원 거푸집은 이러한 기울어진 공간과 형태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III. 기술&자연

: 자연을 품은 미래 친환경 건축물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친환경 기술이 핵심이 됩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직면한 인류에게 신재생에너지 사용과 지속가능한 저탄소 발전전략이 중요해지고 건축에서도 각종 AI, IOT 기술을 활용한 그린 스마트 건축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고 ESG 경영과 RE100 등을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보다 고도의 미래기술로 갈수록 보다 자연친화적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동시대 우리 인류가 직면한 숙명인 듯합니다. 

 

  Foster&Partners / 출처 : arquitecturaviva.com

 

영국의 포스터앤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디자인한 Apple 신사옥은 이러한 첨단 신기술과 그린 스마트 건축과의 조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 280만 평방피트의 거대한 원형의 링 형태로 만들어진 신사옥은 중앙에 자연녹지로 이루어진 공원과 산책길을 담고 있습니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은 1년 중 9개월 동안 난방이나 에어컨이 필요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연환기 공간입니다.  

 

Foster&Partners / 출처 : arquitecturaviva.com 

 

옥상에서는 건축물에 설치된 패널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이 17메가와트(MW)의 태양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 중 하나이면서 가장 자연친화적 건물 중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Apple의 창업정신과 미래지향적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과 기술,

그리고 인간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흔히 건축의 기원은 자연에서 찾습니다. 인류가 만드는 어떠한 건축도 자연의 장대함과 아름다움, 그 영원함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자연의 원리, 자연의 모습, 자연의 공간 등 자연의 모든 요소는 우리에게 항상 큰 영감을 줍니다. 건축가들은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고자 하고, 자연을 닮은 형태를 만들고자 하고, 자연과 함께 머무는 공간을 디자인하고자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은 건축 디자인의 가장 큰 스승일 듯합니다. 


기술은 이를 이루어내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건축은 인간이 자연을 따라 만드는 인공 구조물로, 중력에 저항하여 무언가를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류 문명의 발달에 따른 기술의 혁신은 사회의 변화를 수반하고, 사회의 변화는 건축의 변화로도 이어져 왔습니다. 또한 건축은 모든 기술의 집합체이기에,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항상 새로운 건축을 탄생시켜 왔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건축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인간이 거주하기 위해, 배우기 위해, 즐기기 위해 등 무언가의 목적을 갖고 우리는 건축 행위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도시는 이미 고도화되었기에 단순히 거주의 목적만이 아닌 다양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목적을 가진 건축 활동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공간에 따라 인간은 영향을 받고 우리 사회와 문화를 형성합니다. 스마트 기술로 대변되는 동시대 기술 사회에 있어서 우리의 도시를 건축하는데 자연과 기술의 조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소통 하는 방식
  • #자연
  • #기술
  • #인간
  •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