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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집의 조건
영화를 통해 만나는
미래의 스마트홈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산학협력교수 곽지영

2021.09.24

사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소속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출처: https://www.instagram.com/rozy.gram/

 

로지, 루시, 래아...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 이름들은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인플루언서 가상 인간들의 이름이다. 알렉사, 시리, 빅스비,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1세대가 목소리로만 존재했던 것과 달리, 친근한 비주얼까지 갖춘 모습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여 년 전쯤 그들의 조상 격이 되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PAT, Personal Applied Technology의 약자로, 1999년 개봉한 디즈니 영화 ‘Smart House’의 주인공이다. 

 

영화 속에서 쿠퍼 가족이 입주하게 된 Smart House는 겉보기에는 보통의 집과 다를 바가 없지만, 중앙 제어실에 설치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인 PAT이 통제하고 있는 미래의 집, 스마트홈이었다. Smart House의 관리자인 PAT은 쿠퍼 가족에게 있어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는 존재였다. 실내 환경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의 취향에 맞는 미디어를 골라 재생시켜 주거나, 요리, 청소 같은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등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들 벤이 아빠의 재혼을 막기 위해 더 강한 모성을 갖도록 PAT을 조작하면서 PAT은 디자이너의 의도와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있어 Smart House는 결국 꿈의 집이 아닌 악몽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영화 속 악역으로 묘사되는

미래의 기술


스마트홈은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 SF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Smart House의 경우처럼 영화 속 스마트홈이 주인공을 감시하거나 해치는 ‘악역’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스마트 기술이 미래 세상과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이라 믿는 공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스마트홈이 받는 억울한 오해가 몹시 불편하다. 대체 스마트홈이 그런 나쁜 평판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물론 영화처럼 과장된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스마트홈에 대한 좋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10년 전 새로 지어진 이른바 ‘u-시티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의 일이다. 입주 전, 영화 속 쿠퍼 가족처럼 스마트 아파트를 소개하는 투어 서비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곳곳에 구현된 ‘스마트 기능’들에 대한 설명에만 20~30분 정도가 걸렸다. 입주 날에는 아파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른여덟 가지의 ‘스마트 가젯(Gadget)’이 든 보따리를 선물처럼 받았다. 스마트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 직업인지라, 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 서른여덟 가지를 하나씩 직접 테스트해 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가젯들이 대부분 내가 가입한 통신사와는 맞지 않아 사용할 수 없거나, 며칠에 한 번씩 꼭 충전을 해줘야 해서 번거롭거나, 혹은 무거운 걸 굳이 들고 다녀야 할 만큼의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혹은 그냥 왠지 귀찮거나...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한두 번 테스트만 해본 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마지막까지 애용한 것은 공동현관문부터 우리집 현관문까지 비밀번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스마트키’였는데, 하나를 분실한 날 불안한 마음에 현관문의 스마트키 설정을 완전히 해제해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확인해 보니, 어느새 서른여덟 가지의 가젯들은 모두 보따리로 다시 들어가 있었고, 처음 받았던 상태 그대로 잘 싸인 채 창고 한쪽에 고이 보관되었다가 몇 년 후 다음 입주자에게 인도되었다.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초창기 스마트홈의 실패


초창기 스마트홈의 실패는 사용자의 필요나 기호를 고려하기보다 공급자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선정한 기능들을 모아 놓은 종합선물상자 같은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입주자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불편하거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키를 잃어버린다거나 하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비하지 못해, 오히려 불안감을 유발하고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멋진 영웅으로 그려질 수 있을 만큼 ‘바람직한’ 스마트홈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공교롭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또 다른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열연한 명품조연들, 루미에(Lumiere), 콕스워스(Cogsworth), 포트 부인(Mrs. Potts), 칩(Chip), 워드로브(Wardrobe)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원래 야수의 성에서 집안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야수와 함께 마법에 걸려 각자의 원래 ‘지능과 인성’을 그대로 가진 채 집안의 다양한 ‘사물들(Things)’로 변신했다. 원래 시종이었던 루미에는 촛대로 변하여 분위기에 맞게 집안 조명을 조절하고, 괘종시계로 변한 집사 콕스워스는 사랑에 빠진 주인 야수 가까이에서 대화상대가 되어 주며 연애 상담이나 인생 조언을 해준다. 원래 요리사였던 포트부인과 그녀의 아들 칩은 각각 주전자와 찻잔이 되어 손님에게 따뜻한 차를 권하고, 화려하고 유쾌한 오페라 가수 워드로브는 옷장이 되어 아름다운 노래와 멋진 의상으로 벨을 기쁘게 해준다. 

 




지능형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홈의 등장


영화 ‘Smart House’에서 그려진 스마트홈이 강력한 인공지능 서버를 중심으로 한 모델이었던 반면, 미녀와 야수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자율성을 강조한 ‘지능형 사물인터넷(Intelligent Internet of Things)’ 기반의 스마트홈이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란 가전제품, 모바일, 웨어러블 등 다양한 사물에 센싱(Sensing)과 통신(Network) 기능이 내장되어, 무선 통신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초기의 IoT 제품들은 센싱과 통신 기능만이 강조된 사례가 많았으나, 시장에서 실패를 경험한 후, 최근에는 지능형 IoT 기술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지능형 IoT’ 기술이란 지능을 가진 스마트한 사물(디바이스, Device)들의 네트워크를 말하는데,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클라우드(Cloud) 상에 엄청난 규모의 빅데이터(Big Data)가 수집되고, 그 데이터를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인공지능(AI)으로 변환하여, 연결된 디바이스들의 동작에 활용하는 원리이다.

 

지능을 가진 스마트한 사물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지능형 IoT 기반의 스마트홈’에서는 영화 ‘Smart House’의 PAT과 같은 중앙 처리장치의 명령이 없이도, 사물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주인과 방문객을 최상의 서비스로 대접한다. 그들은 맡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소통(Communicate)하며, 사람처럼 서로 교제하거나 사회적 관계(Social Graph)를 형성하기도 한다. 외부의 침입자가 쳐들어오거나 집안에 비상 상황이 생기면 서로 협력하여 싸우고, 위기로부터 집과 주인을 지켜낸다.

 

영화 ‘Smart House’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이제 영화 속 상상이 모두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PAT와 같은 인공지능 챗봇(Chatbot)이나 로봇(Robot)을 집의 총괄 관리자로 고용할 수 있고, 미녀와 야수 영화 속의 똑똑하고 믿음직한 지능형 IoT 사물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말하자면, ‘Smart House’의 PAT과 ‘미녀와 야수’ 속 사물들이 협력하여 어벤저스팀을 결성한 진정한 스마트홈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스마트홈


예를 들어, 고단한 퇴근 길, 아파트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면 게이트봇(Gate-bot)은 주차장을 지키는 파킹봇(Parking-bot)에게 내 차의 도착을 귀띔한다. 파킹봇은 우리 집 가까이 가장 편하게 주차 가능한 위치를 찾아서, 내 차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을 통해 주차 위치를 안내한다. 직접 주차하기 어려운 날에는 파킹봇에게 발렛파킹을 부탁할 수도 있다. 파킹봇은 내 차를 인도하여 안전한 위치에 주차한 후 내 스마트폰으로 주차된 위치와 인증샷을 보낸다. 무거운 짐이 있을 때는 현관 입구에 비치된 자율주행 카트봇(Cart-bot)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카트봇이 미리 알려준 덕분에 공용로비에 보관되어 있던 배송물품까지 잊지 않고 픽업한 후 미리 대기 중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안히 집까지 들어온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쾌적한 집안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에어봇(Air-bot) 덕분에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적정 온도, 습도 유지와 먼지, 악취 제거는 물론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까지 알아서 살균하며 청정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급히 나가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설거지, 청소, 빨래도 내가 없는 동안 하우스봇(House-bot)이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청소기와 함께 협력하여 모두 깔끔하게 처리해 두었다. 

 

미래의 집은 지능형 IoT 기반의 스마트한 디바이스들의 활약으로, 점점 더 생산적이고 편안한 생활과 휴식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과 우려도 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마트홈이 되기 위해서는 집과 집안의 모든 디바이스들이 서로 잘 연결되고 통합되어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 동작하고, 집 주인의 라이프스타일과도 조화될 수 있는 하나의 에코시스템(Ecosystem)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그 조화가 무너지면서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PAT의 경고를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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